비장하게 시작했다가 약간 시시하게 끝나버린 영원속에




논 지 한 달 되었다. 짧게 시즈오카에 다녀왔고 출판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며칠 알바를 했고 다음 주부터 다시 새로운 곳으로 출근한다(!!!). 백수 생활이 이렇게 금방 끝나버리다니. 그만둘 때부터 주위에서 왠지 금세 다시 일할 것 같다, 넌 놀 팔자가 아니다 등의 저주를 퍼부었지만 코웃음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는데 나만 나를 몰랐던 것이다. 시즈오카라도 안 다녀왔으면 이거 참 후회할 뻔. 하지만 이번 여행기는 못 올릴 것 같다. 왜냐, 일단 카메라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선부터가 보이질 않는다. 어찌어찌 찾아내면 나는 다시 바뻐질 것이고 기억은 희미해질 것이며.

다음 주부터 다시 출근이라니 맴이 급해져서 어제 오늘 막 사람들을 만났다. 어제는 나의 사랑 삼과장님들과의 퇴사 후 첫 상봉이었다. 못 본 동안 차곡차곡 쌓인 시트콤 에피소드들을 듣고 밥도 커피도 얻어먹고 선물도 받았다. '사랑받는 막내 캐릭터'를 내가 태어나서 처음(이자 아마 마지막)으로 수행하게 하는 신기한 사람들. 나도 이런 역할을 할 수가 있다니...(물론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는 듯.) 신세지는 느낌이 무서워서 여간해선 받기보다 주기를 택하는 나는 거기선 사양하지 않고 그분들이 주는 것을 신나게 받는다 와하하.

오늘은 내가 딱 싫어하는 날씨였는데 홍대 부근에서 일하는 동우와 연희동 사는데 오늘 출근 안 하는 현우를 만나고자 홍대에서 점심을 먹었다. 밥 먹고 커피 마시러 이동하는 동안 누가 하늘에서 물을 아주 사정없이 쏟아부어가지고 운동화 속까지 질척 출렁거리는 바람에 그냥 가까이에 보이는 아무 데나 들어갔다. 아무 데나 가는 것 싫어하지만 비가 더 싫음. 그리고 예쁘고 코딱지만 한 나의 양우산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음을.. 나름대로 막 살던 우리들이었는데 이제 다들 각 잡고 금연하고 운동하고 이런다고 해서 함께 나이 먹어가는 처지임을 실감했고 매우 좋았다. 코흘리던 시절을 내가 분명 보았는데 나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어버버하면서 네누나...이러던 것들이 나보다도 철이 들엇다 소름. (철든 기준은 걍 금연과 운동인..) (아 옛날얘기 고만해야지 입 닫자.)

퇴사하면 갱장히 신날 줄 알았다. 왜냐면 그렇잖아도 나는 약간 감흥부자인 면이 있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길을 걸으며 음악만 들어도 캬~~ 를 잘했기 때문에 회사까지 안 가면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볼 줄 알았다. 근데 생각보다 그렇진 않았다. 정확히 말하면 '특별히 행복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'랄까. 잘 먹고 잘 자고 뭐 즐겁다면 즐거운 일상이었지만, 대단히 행복하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었다. 당연한 걸 적당히 누리는, 인간다운 삶의 마지노선 정도? 이 정도로도 못 살면 그게 바로 불행인데 어떤 면에선 불행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. 감사 잘하는 사람이 행복도 잘 느낀다던데 감사할 일이 아닌데도 감사하는 거 나는 너무나도 짜증이 난다!! 네 저는 노예근성퇴치운동본부에서 나왔고 다된 밥에 비관 뿌리기에 자신있습니다. 사실 비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요. 

퇴사하면 이거도 하고 저거도 해야지~~ 했던 것들은 역시나 거의 다 못했다.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... 
이제부턴 걸어서 출퇴근한다!!! 몇 번 엎어지면 코가 닿는지 차차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.


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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