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0180921 관심 영원속에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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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담은 아직 내게 아무런 답을 주진 않지만, 질문을 남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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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념을 재빨리 습득한 덕에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다고도 생각한다. 절망이나 남 탓을 오래 하고 앉아 있는 건 구리니까. 비관이 물어다 준 낙천으로 하루하루 버틴다. 해야 하는 일 중에, 혹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그나마 하고 싶은 걸 고르는 데 익숙하다. 책임감은 곧 내 자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진 적 없이 딱 붙어 있어서, 그걸 제외하고서 그냥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생각하기가 어렵다. 모든 일을 정신력으로 해낸다. 머릿속에서 must 버튼에 불이 딱 들어오면 난 무조건 그냥 go. 내 체력이나 의지나 욕구나 기분이 따라주지 않아도 그와 상관없이 정신력으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.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. 근데 그게 잘 안 되기 시작한 것이다. 고장난 걸 수리하려고 여기저기 찾아갔다. 나를 아껴서라기보단, 어서 제기능을 해야 또 써먹으니까. 팔자 좋게 마냥 놀 수가 없으니까.

신뢰할 만한 이들의 의견에 의하면, 나는 나를 챙기고 보호하는 데에 너무 무심하다. 나는 요새 정말 아는 게 없으므로 일단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. 이런 깨달음이 오면 남들은 막 슬퍼하거나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직 현실감이 없어서 그런 감정까진 들지 않는다. 그럼 나한테 잘해준다는 게 뭐지? 스스로 물었으나 전혀 떠오르는 답이 없다. 이 분야에서라면 나보다 능통한 라블리에게 물었더니, 아무래도 내가 평소에 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면 되는 것 같았는데 그런 거라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. 어느 날 라블리와 함께 간식을 나눠 먹다가, 가장 맛있는 걸 그에게 주거나 내가 먹더라도 제일 마지막까지 남겨놓는 걸 보고 "그럴 땐 그냥 니가 먼저 집어서 빨리 먹는 거야."라고 알려주었다. 그러고는 "이거 봐, 니가 지금 안 챙기면 없어지잖아." 하면서 자기가 먹었다. 냉정한 사람... 근데 나는 그걸 놓쳐도 그다지 아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? 야망도 욕심도 없고 그냥 그걸 뺏어 먹어서 누구 하나라도 행복하다면 다행이고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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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태에서 자꾸 말을 하다 보니, 내 입에서 나가는 말들이 다 거짓말 같다. 일단 나름대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, 그게 진짜인지를 모르겠다. 내가 나한테 속아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냥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하고 있는 것 같고, 거짓말은 왜 이렇게 쉬운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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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앞으로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는다'라는 안건을 그 집 아들이 이번에 내려가서 얘기하겠다고 하는데, 부디 우리가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서 미소 지으며 상경하게 되길 바란다.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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